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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모바일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 우리는 클라우드에서 살게 될까 아니면 데스크톱에서 살게 될까?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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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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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BIT

14,422

제공 : 한빛 네트워크
저자 : Andy Oram
역자 : 박정근
원문 : Will Google Make Us Stupid? Will we live in the cloud or the desktop?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이 있는 듯한 퓨 리서치 센터[01]는 수년마다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 설문 조사를 수행하는데, 이 설문에서는 기술과 사회 부문에서 선정된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완전히 자유롭고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퓨 리서치의 설문은 상당히 재미있는데, 어떤 질문은 숨이 약간 막힐 정도로 날카로운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설문을 펴 본다면, 처음엔 "내가 과연 답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고 의문을 가지다가 결국엔 "그래,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니, 부담 없이 말해보지, 뭐"하고 마음먹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주에 설문에 다시 참여를 했습니다. 퓨 리서치는 설문 참가를 요청 받은 사람들의 "예/아니오" 응답을 모두 결과로 취합하겠지만, 저는 이 설문을 제가 선택한 이슈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설문조사에 참가하고 싶으면, http://www.facebook.com/l/c6596;survey.confirmit.com/wix2/p1075078513.aspx를 방문한 후 비밀번호 2000을 입력하세요)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

null 첫 번째 질문은 인터넷 상에서의 기술이나 정책 이슈에 관한 것 혹은 심지어 사람들이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 능력과 탐구 방법에 있어서 위험요소로 알려진 것들에 관한 것입니다. 보통 기술이 학습이나 훈련에 있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질문들은 우리의 가치와 우리가 어떤 식으로 기술을 선택하는지에 관한 것이지 기술 그 자체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제가 이 질문을 다루는 기준입니다. 저는 기술이 중립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채택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욕구 속에서 발전해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니콜라스 카[02]가 아틀란틱(Atlantic)지에 게재한 질문들을 존중하며, (그가 "심지어 타자기가 글쓰기를 빈곤하게 만들 수도 있다"라고 했을 때, 그러한 걱정거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지만) 그의 우려를 진정시키고 싶습니다. 그의 질문들은 모두 사람들의 선택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성찰을 통찰력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평가한다면, 우리가 오래 계속된 경험이 이슈 해결을 위한 훌륭한 판단력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우리가 (요컨대) 검색 엔진이 답해주지 않는 지식을 원한다면, 우리는 깊이 있는 사고를 계속하게 될 것이고, 구글은 그것을 단지 개선시키기만 할 것입니다.

수많은 글과 토론의 질을 저하시키는 일들에 즉각적으로 분석하고 바로 응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검색 엔진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인 연줄을 이용해 특종을 올리려는 충동이 조사 저널리즘을 위한 자금의 부족과 결합되어, 중요한 정보들을 다루는 보고서의 가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구글은 그것도 마찬가지로 책임이 없습니다. (신문과 잡지에서 줄어드는 광고 매출을 구글의 책임이라 보지 않는 한) 어쨌든, 이러한 사회적이고 경영적인 추세는 정보를 처리하는 우리에게 있어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나, 검색 엔진 자체는 이러한 추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검색 엔진이 하는 일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러한 정보를 단순히 딜레당트[03]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지식을 강화하고, 핵심적인 분석에서 더 정교한 방법을 통해 획득된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구글은 연구분석의 마무리 단계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취합하기 위해 소모되었던 시간들을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아틀란틱지에 게재된 니콜라스 카의 기사를 읽어보았지만, 이 답문을 쓰기 전에, 조용히 물러나서 기사를 검토할 목적으로 웹 검색을 사용했습니다. 구글은 저의 친구입니다.

우리는 클라우드에서 살게 될까 아니면 데스크톱에서 살게 될까?

확실히 우리의 컴퓨터 사용은 점점 소규모 디바이스 (책상 위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손에 쥐고 사용하는 단말기) 환경으로 바뀌고 있으며, 이들은 클라우드에 있는 대규모의 데이터 및 어플리케이션과 연동하게 될 것입니다. 컴퓨터 자원을 소규모와 대규모의 두 갈래로 나누는 이러한 이원적 경향은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사생활 침해 문제, 어플리케이션 공급자가 경쟁이 제한될 정도로 대량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추가적인 혁신이 둔화되는 위험성, 데이터 품질에 대한 의문, 서비스가 중지될지 모르는 우려(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 트위터가 다운되었습니다)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넷북, 타블렛 그리고 휴대폰이 대세가 되어서 데스크톱 컴퓨터의 가격이 기업이나 전문직 종사자만이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치솟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중에 의한 혁신은 꺾일 것이고, 대중의 역할은 소프트웨어 소비자로 축소될 것입니다. 혁신이란 것은 수많은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고품질의 키보드와 대형 모니터를 통해 소통을 해왔던 대중 컴퓨터 사용자의 능력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풀뿌리 혁신이 클라우드의 도래와 함께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클라우드 어플리케이션 공급자가 풀뿌리 혁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 에릭 본 히펠[04]이 내린 결론을 따라 - 이용자가 서비스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게끔 만들어줄 것을 제안합니다. 코드를 오픈소스화 해주십시오. (그보다 더, 이용자가 수많은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하지 않고도 소스를 수정할 수 있는 테스트 환경을 구축해주십시오.) 그러면, 키보드를 가진 모든 사람이 개발팀의 멤버가 되어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서비스는, "누구나 개발하여 만든 플러그인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있어야 함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사회적 관계는 더 나아질 것인가?

구글에 관한 앞선 질문과 마찬가지로, 이 질문도 우리의 기술보다는 우리의 선택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와 연락을 끊게 되는 것을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몇 백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통해 구조화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메일과 소셜 네트워크에 걸쳐있는 기술들은 새로운 친구를 만들거나 먼 거리에서도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회적 규범들이 기술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 것이 걱정이 됩니다. 예를 들어,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당신은 잘 아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렵고, "친구 끊기(unfriend)[05]"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해도 무방한지를 배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실생활에서 그러하듯 우리의 인간관계 그룹(예: 직장, 교회 등)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수준 높은 소셜 네트워크는 아마도 우리의 실제 인간관계를 기술적으로 보다 밀접하게 반영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지만, 사람들이 각자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는 기술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읽기와 쓰기의 상태는 개선될 것인가?

작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시간에 걸쳐 변화합니다. 중세 시대는 끔찍할 정도로 쓰여진 문서들을 남겼습니다. 당시에는 읽고 쓰기를 배웠던 몇몇의 사람들은 아주 소량의 라틴어 (혹은 작문을 위한 다른 언어들)를 배우곤 했습니다. 학자들이 대중들의 수사법에서 표준적인 규칙을 발견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작성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가 인사부서의 작성 표준을 만족시킬지는 의문스럽습니다. 그는 표준화가 있기 전에 살았던 인물이고, 규칙보다는 그의 귀를 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표준(norms)이라는 것에 대한 질문을 다루지 않고서는 읽기와 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격식에 대해 조금 이야기한 후 우리가 서로 의사소통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읽은 것을 즐길 수 있는지)를 따지는 질문들에 답해보려 합니다.

많은 문화권에서, 말과 글은 매우 다르게 나뉘어져서, 거의 다른 언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메이카에서 사용되는 영어는, 자메이카인들이 미국인들과 이야기 할 때, 미국식으로 말하고 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해도, 미국에서 사용되는 영어와는 매우 다릅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은 표준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지만, 언어의 사용은 환경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요즈음엔, 글의 문맥이 갈수록 더 지속적인 소통을 요하는 매우 짧은 형식의 표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모호하지 않은 용어와 명료한 논리적 진행 속에서 논지를 진술하는 능력을 잃을까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온라인에) 글을 쓰고 나서도 독자와 즉각적인 접촉을 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모호함이 없어질 때까지 그들의 생각을 다시 고쳐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품격 있고 설득력 있는 첫 문장을 만드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데, 그 문장은 반복될 수많은 단계의 첫 번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대화가 우리 세대에서 지식을 발전시키고 공유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합시다. 입센[06]이 헤다 가블러[07]를 집필할 때의 생각은 - 에일러트 뢰브보르그[08]과 같은 독립적인 철학자도 세상을 바꾸는 걸작을 집필할 수 있다 - 케케묵은 생각입니다. 현세대의 뢰브보르그는 그의 통찰력을 일련의 블로그 글로 남길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가 쓴 글에 사려 깊은 댓글을 달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점이 뢰브보르그의 독창성을 없애거나 높은 영감의 단계에 오르는 것에 방해가 된다면, 글쎄, 그것은 아마도 더 일반적인 사상가의 압력에 굴복하는 뢰브보르그의 잘못일 것입니다.

고독한 천재의 낭만파적 이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정보 교환을 위해 어떠한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까?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을 살펴 보십시오. 사상가는 서로에게 소통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도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독서를 폄하했는데, 그 이유는 독자는 작가와 직접적으로 의사소통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대화는 보다 유익하고, 진리에 더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고대의 유대 학자들 역시 독서보다 논쟁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들도 분명히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문서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가르침의 대부분은 대화를 통해 전달되었으며, 학자들이 그 가르침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기록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가르침의 내용들은 전혀 문서화되지 않았습니다.

형식적인 작문에 있어서, 저는 미묘한 어조와 형식적인 규칙의 광범위한 지식으로부터 전해진 재치 있는 표현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요즈음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디킨스가 빚어낸 언어들을 이해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디킨스가 그의 소설을 출간했을 당시보다는 그 수가 줄어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어떤 한 시대의 미학에 갇혀있지는 맙시다. 디킨스는 그 시대에 인기 있었던 문체로 집필했습니다. 그 다음 세기에는 토니 모리슨, 존 업다이크 그리고 블라디미르 노보코프가 훨씬 덜 형식적인 방식으로 글을 썼으며, 그들은 각자의 방식에서 아름다운 문장가로 여겨졌습니다. 인간의 창의성은 무한하며 언어는 우리 모두가 즐거움을 누리는 핵심적인 기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시대에 적합한 언어와 유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될 것입니다.

저는 문법이나 특정한 문맥에서 반드시 필요한 표현에 대한 표준은 계속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사람들이 그러한 표준들을 배우고 연습하는 수고를 계속 할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편집자로서 저는 어휘와 문법 그리고 다른 스킬은 부족하지만, 훌륭한 통찰력과 근사한 표현 능력을 가지고 있어 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수많은 작가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작가들과 일을 하며, 그들이 업계가 인정하는 표준에 이를 수 있도록 그들을 길러낼 것입니다.

Y세대[09]들은 나이가 들어도 그들에 대한 정보를 계속 공유할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근거 없는 추측 밖에 할 수 없지만, 제 생각은 Y세대들은 그들이 지금 하는 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앞으로도 계속 공유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들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많은 정보들을 그들의 사이트에 이미 게시했는데, 무엇으로 그들은 말릴 수가 있겠습니까? 1 페니로? 1 파운드로?

사회적 규범들은 더 많은 솔직함을 받아들이도록 진화해왔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이혼을 했음에도 결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빌 클린턴은 마리화나를 피웠음에도 선출되었습니다. 사회의 기대치는 점진적으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주요기관과 우리의 관계는 변할 것인가?

저는 설문 담당자들이 이 질문의 범위를 아는 것이 답변을 어렵게 만들 것을 알면서도 이 문제를 골랐다고 확신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이는 즐거움을 주는 일입니다.

광범위한 정보와 생각의 공유는 확실하게 기관과 대중의 상대적 권력 관계를 변화시킬 것이지만, 그 변화는 두 개의 매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해설자에 의해 제기된 하나의 시나리오에서는, 내부 고발 및 기관에 대한 뉴스 발표가 쉽게 바뀐 점은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상호 협력하는 개인의 능력과 결합되어, 기관이 더 책임 있고 대중에게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사회적 운동을 이끌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시나리오에서는 거대 기관들이 빠른 속도의 의사소통과 대량의 데이터 저장소를 통해서 훨씬 엄청난 중앙집권적인 통제를 가할 것이며, 반대 세력을 짓밟기 위해 감시 시스템을 가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떠한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정부 및 사업 기관에게 대중의 인풋에 문을 열고 이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 있고, 기관들은 모든 혜택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것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역에서는 비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온라인 익명성은 계속 될 것인가?

예, 저는 사람들이 단체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정보를 찾는 수 많은 이유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새로운 시스템 (미 연방 정부 포럼 같은)은 프라이버시와 익명성을 바탕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사업체들은 마케팅의 목적으로 우리의 신원 정보와 온라인 행동과의 관계를 열렬히 파악하려 하지만, 아마도 우리는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 필명만이 마케팅 정보에 공개되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원 정보 노출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온라인 상에서 오로지 익명 혹은 필명으로만 활동할 것입니다. 정부의 억압에 대해서 불법행위를 행하는 개인과 그러한 사람을 적발하려는 기관들의 전쟁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익명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덕분에, 익명성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맨틱 웹은 영향력을 가지게 될까?

조직들과 뉴스 사이트들이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온라인에 올리면서, 그들은 정보를 체계화하고 상호 연결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시맨틱 웹 사이트들이 한걸음씩 도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학 사이트에서 사용되는 용어의 분류 체계 개선이라든지, 드루팔[10]을 이용하는 블로그 상의 택소노미[11]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버너스리[12]는 개인 사이트의 개선된 정보 검색 보다 시맨틱 웹에서 보다 원대한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사이트의 참가자, 토픽, 스타일, 관점이 달라도 한 사이트에서 다른 사이트로 쉽게 이동할 수 있고 협력할 수 있도록 콘텐츠 제공자와 웹 설계자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10년 전보다 훨씬 더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 것처럼, 이러한 일들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이지만, 현재와 미래 사이의 간격은 아주 큽니다. 이 원대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온톨로지[13]를 확대하고 변화시키는 표준과 함께 동일한(혹은 중첩된) 온톨로지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월드 와이드 웹에서 발전된 모습을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툴들이 앞으로 훨씬 영리해질 것이라는 것에 확신합니다.

툴과 프로토콜이 있다 할지라도 수십억 개의 웹 사이트를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도록 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클라우드가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구글이 만약 통계적 분석을 수행하고 연관되는 링크를 만들어 준다면, 저는 제 사이트에서 그러한 일을 일일이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투입이 있다면 결과는 훨씬 나을 것입니다.

차세대 기술들은 이제 분명히 드러났는가?

예, 저는 회사들이 다음 5년 동안 상용화하고 널리 보급할 기술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술들을 이미 언급했습니다. 더욱 강력한 모바일 디바이스, 가격이 계속 저렴해지는 넷북, 가상화와 클라우드 컴퓨팅, 소셜 네트워크와 그룹 협력을 위한 평판 시스템, 사용자가 직접 제작 가능한 임베디드 시스템, 로봇, 데이터 통계 분석을 수행하는 정교한 알고리즘, 분석 결과의 시각화 툴, 감정 인식 기술, 개인화되고 위치를 인식하는 서비스, 뛰어난 얼굴/음성 인식 시스템, 전자 신문, 비정상 행위 탐지 보안 모니터링, 자가 치료 시스템. 이러한 것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들 수 있는 기술들이 될 것입니다.

5년 이후에는 모든 것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은 정말로 훌륭한 시각적인 프로그래밍 언어 혹은 현재의 언어보다 인간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어떤 것입니다. 쉽고 고차원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는 생산성을 엄청나게 향상시키고, 에러를 줄이면서 (보안 결점도 줄이면서), 보다 나은 인터넷을 만들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을 관여하게 만들 것입니다.

인터넷은 엔드 투 엔드 원칙이 계속 지배할까?

저는 차세대 신기술에 대한 저의 대답을 여기에서 들고자 합니다. 엔드 투 엔드 원칙은 모두가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하는 현재의 필수적인 인터넷 프로토콜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꿀 대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터넷을 샅샅이 재설계하는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덧붙여, 현재의 프로토콜로 가동되고 있는 수 백만의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이는 더욱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입니다. 따라서 엔드 투 엔드 원칙은 가까운 장래 동안에는 계속 지켜질 것입니다.

모바일 회사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는 장벽을 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대 기술의 영역에서는 외부의 기여를 차단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경쟁에서 뒤쳐질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 같은 중앙 기관에 의한 조직적 제한이 없다면, 현 시스템의 제도적 타성은 혁신의 탄력과 새로운 서비스를 바라는 대중의 요구와 섞여서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못 할 것입니다.

[01] Pew Research Center;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02] Nicholas Carr; 세계적 경영컨설턴트이자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글로벌 CEO 132인에 뽑히기도 한 니콜라스 카는 IT 비즈니스 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3년에 발표한 글 "IT Doesn"t Matter"는 "50메가톤급 스마트폭탄"의 파괴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당시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CEO 스콧 맥닐리, MS의 스티브 발머, 휴렛패커드의 칼리 피오리나, 인텔의 크레이그 바렛 등이 가세하면서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글을 「아틀란틱」(The Atlantic)에 발표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03] 딜레당트(dilettante); 호사가
[04[ Eric Von Hippel; 혁신의 민주화(Democratizing Innovation) 저자이자 MIT 교수
[05[ unfriend는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2009년의 단어이다. "unfriend"는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사이트(SNS)에서 어떤 사람을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친구(friend)"에서 삭제한다는 뜻의 동사다. 한국의 대표적 SNS인 싸이월드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unfriend"는 "일촌 끊기"와 비슷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06] Henrik Ibsen;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시인. 사실주의 연극의 창시자로 인정되고 있다.
[07] Henrik Ibsen이 쓴 4막의 희곡이자 이 드라마의 주인공
[08] Ejlert Løvborg; 헤다 가블러의 등장 인물
[09]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출생한 20세 미만의 청소년층을 말한다. 전후 베이비 세대가 낳은 2세들을 일컫는 별칭으로 베이비붐세대의 자녀들에 해당하는 세대여서 "메아리 세대"라고도 불린다. 서구식 생활에 거부감이 없고 쇼핑을 즐기는 13~20세 청소년이 여기에 속하며 소비와 유행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쇼핑을 좋아하고 즐겨찾는 "단골" 상표가 있으며 TV광고에 민감하고 어릴 때부터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자랐으며 용돈을 풍부하게 쓰는 등의 특징을 보인다.
[10] Drupal; 오픈 소스 콘텐츠 관리 플랫폼 (http://drupal.org/)
[11] taxonomy; 정보공급자에 의해 만들어진 표준 분류 체계. 트리구조. 상대어는 폭소노미(folksonomy)
[12] Sir Timothy John Berners-Lee; 영국의 컴퓨터과학자. 1989년 월드 와이드 웹의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고안하여 개발했다. 인터넷에 대한 여러 공로로,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차세대 웹 기술인 시맨틱 웹 기술의 표준화에 힘 쏟고 있다.
[13] Ontology; 사람들이 세상에 대하여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서로 간의 토론을 통하여 합의를 이룬 바를 개념적이고 컴퓨터에서 다룰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한 모델로, 개념의 타입이나 사용상의 제약조건들을 명시적으로 정의한 기술이다. 온톨로지는 일단 합의된 지식을 나타내므로 어느 개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룹 구성원이 모두 동의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므로 여러 가지 정형화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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